[글마당] 기억
살구는 살구야 라고 부르면 꽃잎처럼 환한 입맛이 돌았다 첫눈을 떴을 때 마주한 아버지의 동공 척박한 믿음에 떨어진 살구는 벌레에 물린 자국 가려워 살살긁다 보면 물컹 익어버리는 살구라서 흔하지 않았고 목깃에 물든 흙의 쉰 냄새가 풀물 앓는 발톱을 깎아내며 살구는 살구야 라고 부르고 구불거리며 파먹은 지문은 단단한 통로 속 아장걸음 첫눈을 떴을 때 찍었을 아버지의 인감도장 착한 손등으로 매만져진 눈시울이 가는 계절보다 뒤돌아보는 계절이 더 멀어 욕창 든 자리 새잎 피었으면 살구는 살구야 라고 부르면 어느 아침에 이슬방울 깨지는 한 알의 기억이 투 둑 임의숙 / 시인·뉴저지글마당 기억 자리 새잎